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초판본 한국시문학선집’은 점점 사라져 가는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을 엮은이로 추천했다. 엮은이는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해설과 주석을 덧붙였다.
각 작품들은 초판본을 수정 없이 그대로 타이핑해서 실었다. 초판본을 구하지 못한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했다. 저본에 실린 표기를 그대로 살렸고, 오기가 분명한 경우만 바로잡았다. 단, 띄어쓰기는 읽기 편하게 현대의 표기법에 맞춰 고쳤다.
노산(鷺山) 이은상(1903~1982)의 시조를 이해하기 전에 먼저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근대문학 초창기 때부터 활동한 시인들 가운데 우리에게 익숙한 시인들 대부분이 ‘국가’나 ‘민족’ 관념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롭지 않았다는 점이다. 더욱이 노산처럼 식민지와 해방, 그리고 전쟁을 거쳐 민주화와 근대화가 한창이었던 시대를 지나온 문학인일수록 문학 세계 형성의 가장 안쪽에는 ‘나’보다는 ‘우리’, ‘우리’보다는 ‘민족’이나 ‘조국’이 자리 잡고 있다. 다음으로, 시인과 소설가가 넘쳐 나고 문학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전문화가 이루어지는 오늘날과, 노산이 문학을 시작했을 때처럼 학문의 자기 체현과 이의 사회 실천을 강조한 문장가나 문사(文士) 개념이 새롭게 들어온 근대문학 제도와 섞일 무렵을 구분해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선결 의식은 노산의 시조를 이해하는 데 알찬 수단이 된다. 노산은 어릴 적부터 우리 학문과 서양 학문을 익힌 바탕 위에 시조 같은 시가(詩歌) 형식의 글뿐만 아니라 여러 장르의 문학을 했다. 이런 사실은 이은상을 ‘시조 시인’으로 규정하고 자리매김시키는 데 ‘난관’으로 놓여 있다. 이는 “선생을 대하기도 쉽고 선생이 지은 노래를 부르기는 쉬워도 우리가 선생의 전용(全容)을 안다는 것은 선생의 그 아름답고, 쉽고 서민적인 문장을 읽는 것만으로 터득할 수가 없고”, 더욱이 “차원 높은 경지에 도달한 작가요, 학자요, 사상가”로 “우리가 선생을 단순한 선비나 문장으로만 안다는 것은 지극히 속된 생각이 아닐 수 없다”는 진술로도 증명된다. 여러 연구자들이 이은상을 연구하면서 확인하고 있는 부분도 한마디로 말할 수 없는 그의 사상과 문학 정신이다. 국민의 정서와 마음을 뒤흔들어 놓으면서 널리 애창돼 온 여러 가곡의 노랫말은, 시조 이전에 정겨운 소리요 말의 가락이다. 때로는 끝없는 울적함과 시름에 젖은 탄식이기도 하고, 유구한 세월 동안 쌓이면서 집단 혼으로 존재해 온 보편의 목소리요 울림인 것이다. 이러한 문학 역량과 영향력을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어 갈 것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노산이 이룩한 시조 문학의 커다란 산맥은 어느 누구도 넘보지 못할 우뚝한 준봉이요 우리 현대문학의 빛나는 유산이다. 비단 2000수가 넘는 작품 수뿐만 아니라 그였기에 가능할 수 있었던 왕성한 창작 활동과 민족 사상의 결합과 심화는, 외국 문화와 이론에 점령당해 그 목숨 줄이 끊길 위태로운 처지에 놓여 있는 오늘날 한국 문학이 나아갈 길이 무엇인지를 귀띔한다. 아마도 그것은 한 나라의 문학이 보편성을 띠고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기 위해서라도 자기 얼과 정신을 더욱 키우는 일이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지금도 노산의 시조는 더더욱 우리에게 큰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200자평
이은상의 시에는 나라 이곳저곳을 순례하며 느낀 감상을 시조 율격으로 노래한 게 많은데 이런 시에서는 분단의 아픔을 통탄해하며 통일을 염원하는 시인의 마음이 잘 드러나고 있다. 조국과 국토에 대한 이은상의 사랑이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데, 이은상은 일찍이 자신의 저서에서 “나와 강산 순례는 둘이 아니요, 하나다”라고 술회한 바 있다. 그의 “지식과 사상이 온통 거기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지은이
이은상(1898~1944)의 호는 노산(鷺山)으로 1903년 마산에서 태어났다. 1923년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 1925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1927년까지 와세다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구학문과 신학문을 두루 거쳤기 때문에 이후 그는 전통 시가 양식인 시조를 쓰고 연구하면서도 정형과 특정 주제에 얽매이지 않고 인식의 다양함을 펼쳐 보일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천재 소리를 들었으며, 실제로 문장력이 뛰어나서 당대 여러 문사와 인사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흔히 대중들에게 시조 시인으로 기억되는 노산은 시조뿐만 아니라 시·기행·사화(史話)·전기·수필·평론·논문처럼 소설을 뺀 거의 모든 형식의 글을 썼고 그 수준 또한 높았다. 공식 문단 활동은 1924년부터 ≪조선문단≫에 여러 갈래의 글을 발표하기 시작할 때부터지만 스무 살 때부터 이미 시조 <아버님을 여의고>, <꿈 깬 뒤>와 같은 작품을 써 왔다. 육당 최남선과 가람 이병기와 함께 현대 시조의 개척자였다는 사실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가고파>, <봄처녀>, <성불사의 밤>, <고향 생각>, <사랑> 같은 작품들을 비롯해 수많은 시조들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1938년 일제 탄압이 극심해지자 붓을 꺾고 유랑 길에 올라 전남 백운사에 은거하기도 했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일본 경찰에 붙잡혀 함남 흥원 경찰서와 함흥 형무소에 구금되었다. 해방을 맞이하고 나서 호남신문사를 창립해 사장을 지내고 국학 도서 출판관 사장 또한 지냈다. 그 뒤로 전남 광주 호남신문사 사장, 대구 청구대 교수, 이충무공기념사업회 회장, 민족문화협회 회장,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장, 재단법인 한글학회 이사, 한국산악협회 회장, 독립원동사편찬위원회 위원장, 영남대 교수, 한글학회 회관 건립 위원회장, 한국시조시인협회 종신 명예회장, 예술원 종신 회원, 국정자문위원, 통일촉진회 최고위원 등을 역임했다. 1982년 서울에서 사망했다.
시조집에는 ≪노산시조집≫(1932), ≪조국 강산≫(1954), ≪노산시조선집≫(1958), ≪푸른 하늘의 뜻은≫(1970), ≪기원≫(1982)이 있으며, 저서에 ≪묘향산유기≫(1931), ≪노방초≫(1935), ≪무상≫(1935), ≪탐라 기행 한라산≫(1937), ≪노산 문선≫(1942), ≪이충무공 일대기≫(1946), ≪대도론≫(1947), ≪조선 사화집≫(1949), ≪민족의 맥박≫(1951), ≪노변필담≫(1953), ≪피어린 육백리≫(1962), ≪노산 문학선≫(1964) 등이 있다.
엮은이
정훈은 1971년 마산에서 태어났다. 부산외국어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부산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으며, 2003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기형도론>이 당선되었다. 부산외대에 출강 중이며, 평론집으로 ≪시의 역설과 비평의 진실≫(2011), 공저로는 ≪1930년대 문학의 재조명과 문학의 경계 넘기≫(2010), ≪지역이라는 아포리아≫(2010), ≪문학과 문화, 디지털을 만나다≫(2008), ≪2000년대 한국문학의 징후들≫(2007)이 있다.
차례
≪노산 시조집≫
臨津江을 지나며
成佛寺의 밤
고향 생각
봄
봄 처녀
三步庭
答友
午睡 아닌 午睡
물건도
가곺아
盟誓
옛 동산에 올라
雪夜吟
쓸쓸한 저녁이다
거울 앞에서
눈보라 치는 밤에
이 마음
꿈 깬 뒤
옛 江물 찾아와
그리움
사랑
새가 되어 배가 되어
못 깨는 생각
觀德亭
善竹橋
圃隱 舊居
花園
紫霞洞
金剛을 바라보며
長安寺
梵鐘이 우는구야
萬瀑洞 八潭歌
白雲臺로 오르며
毘盧峰 其一
隱仙臺
玉流洞
九龍瀑
玉女峰
金剛에 살으리랏다
소경 되어지이다
달
입 담은 꽃봉오리
사랑
밤ㅅ비 소리
山 우에 올라
≪조국강산≫동해
동해 2
동해 3
남해 1
남해 2
남해 3
서해 1
서해 2
서해 3
≪노산 문학 선집≫
너라고 불러 보는 祖國아
가서 내 살고 싶은 곳
친구들아
오뚝이
檄
‘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避難圖
祖國아
太陽
廢墟 詩帖
못 건너는 江
옛 벗은 반가운데
崇禮門
슬픈 歷史
南山엔 오르지 마오
江 건너왔소
오늘은 三月 초하루
高地가 바로 저긴데
地圖
悲願 十 年
다시 우뚝 서 본다
젊은 太陽과 함께
인경을 치자
迎新賦
≪푸른 하늘의 뜻은≫
나의 조국 나의 詩
당신과 나
烏山 장터
나발 부는 사나이
북위 몇 도에 서 있는지
춘향의 말
내일
닻을 들게 돛을 달게
먼지바람이 이리 떼처럼
낙화암
한밤과 새벽의 어귀에 서서
六月의 회상
摩天樓
解放史
구름
三月
달
창공
야학교
大地는 이제 고요히
멱
獨白
산에서 내려온 사람
땅의 자서전
어느 것을
파도야
밤이 오면
자취
돌아보면 빈 언덕
태초의 순간을
달은 예대로
봄 三題
新綠
푸른 하늘의 뜻은
한 그루 나무를
≪기원≫
序詩
저주의 서해
백사장의 발자국
웃고 피는 도라지꽃
물과 피
백로의 낙원
죽음의 강 나루터
농부 된 어부
낙화
강둑에 주저앉아
젊은 넋들
板門店
돌아오지 않는 다리
갈림길에서
좁은 산길
산언덕을 넘으며
재물의 자서전
신록 속에 서서
雪馬嶺
비 속의 능선
새 농막
옛 38경계선 비문
두견새와 다람쥐
‘칡꽃마을’ 이야기
해골과 구두짝
孤石亭
乳房高地
원혼들의 호소
산철쭉·산난초
스승과 제자
검은 구름 토하는 고개[黑雲吐嶺]
아레스! 멀리 가라
근심 없는 마을
맑은 시냇가에서
香爐峰 위의 기도
地球村
한 겨울만 더 지나면
파도도 울고 나도 울고
한밤과 새벽의 어귀에 서서
동해의 아침 해
고통과 부활
새 역사는 개선장군처럼
기원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1. 고향 생각
어제온 고깃배가 고향으로 간다하기
소식을 전차하고 갯가으로 나갓드니
그배는 멀리떠가고 물만출렁 거리오
고개를 숙으리니 모래씻는 물결이오
배뜬곧 바라보니 구름만 뭉기뭉기
때묻은 소매를보니 고향더욱 그립소